말씀이야기 2020. 3. 31. 15:13

퍼온글)

크리스천투데이에 방금 올라온 기사인데,

전부는 아니지만 공감이 되는 부분이 많네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글입니다.

그래서 그 부분들만 올렸습니다.

성경은 덮어놓고 믿는 책이 아니다

입력 : 2020.03.28 20:03

 

[아트설교연구원 인문학 서평] 겸손, 믿음, 사랑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 서병훈 역 | 책세상 | 288쪽 | 8,900원

 

종교개혁, 루터가 처음 시작한 것 아냐
옳은 소리, 대세 넘어 살아남기 어려워
모두가 ‘Yes’ 말할 때 ‘No’ 할 수 있는가
이상한 눈초리 거둘 방법 ‘생각의 자유’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대학 교회 정문에

종이 한 장이 붙었다. <95개조 반박문>

그리고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

아니, 종교개혁이 ‘다시 시도’되었다.

 

종교개혁은 루터가 시작한 것이 아니다.

그전에도 다양한 모습으로

스무 번도 넘게 더 시도됐다.

단지 모두 진압되었을 뿐이다.

 

옳은 소리를 내는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다.

옳은 소리가 대세를 넘어 살아남기가 어려울 뿐이다.

중요한 담론들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 담론이 진압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기가 어려울 뿐이다.

 

이런 말을 하면, 나도 모르게 이렇게 다짐한다.

‘바른 의견을 끝까지 견디고 인내하며, 지켜야겠다’,

‘중요한 담론을 끝까지 지켜주어야겠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의 다짐과 다르다.

현실은 우리가 ‘바른 의견’을 말하는 사람이기보다

‘바른 의견’을 막아서는 ‘대세’일 확률이 많다.

‘중요 담론’을 지켜주는 사람이기보다,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을 확률이 더 많다.

 

사람들은 ‘바른 의견’이 이슈가 되기 전까지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독특하다며 이상한 눈초리를 보내기 일쑤다.

더욱이 ‘신앙인’은 새로운 시도에 ‘보수적인 판단’을 내릴 때가 더 많다.

그렇게 ‘나’ 때문에 ‘중요한 담론’은

싹을 틔우지 못하고 말라 버릴 수 있다.

 

이런 잘못을 범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비록 ‘중요한 담론’을 제시하지는 못해도,

이상한 눈초리로 보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있다!! ‘존 스튜어트 밀’은 그것이 ‘자유’라고 말한다.

‘생각의 자유를 보장하라!’

자신이 쓴 책 <자유론(On Librety)>에서 주장하는 말이다...

 

 

<자유론>은 1859년에 출판됐다.

당시 저자 존 스튜어트 밀의 나이는 53세였다.

아버지 ‘제임스 밀’은 공리주의 철학의 대가였다.

이 집안은 2대에 걸쳐 학명을 떨친 철학자 집안이다.

 

이런 아버지 밑에서 자라다 보니 세 살 때 그리스어를 배웠고,

여덟 살 때 라틴어를 배웠다.

‘스튜어트 밀’은 한마디로 신동이다.

13세 되던 1819년 경제학을 공부했고,

16세에 첫 논문을 썼다.

그 논문에서 귀족주의적 편견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어릴 때부터 남과 다르게 생각한

천재 존 스튜어트 밀,

그의 입장에서 ‘생각의 자유’는

꼭 보장되어야 할 덕목일 수밖에 없다.

 

<자유론>은 총 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시민의 자유와 사회적 권력

 

사회에서 주류가 된 의견은

그 자체로 소수 의견에게 폭력이 된다.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에게 대세라는

이름으로 윽박지르고 강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이러한 모습이 더 심각하다.

단순히 소수 의견을 향한 강요를 넘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 모두 적으로 돌리고 있다...

 

요즘 대한민국은 ‘생각의 자유’가 있는 나라가 아닌

‘생각의 강요’만 남은 나라 같다.


2장: 생각의 자유를 보장하라

생각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크게 네 가지다.

첫째, 침묵을 강요당하는 의견이 진리일 수 있다.

지금은 대세에 밀린 소수 의견이고

잘못된 의견처럼 보이는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진리라고 드러날 수 있다...

 

예수님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당시 예수님의 죄목은 아이러니하게도 ‘신성모독’이다.

하나님이 ‘신성모독’이라는 죄 때문에 죽으셨다.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으니,

당시 시대적 상황으로만 보면 그리 틀린 ‘죄목’도 아니다.

내 생각만이 옳다고 생각하면

예수님이 오셔도 못 박아 버리게 된다.

 

그러니 기독교인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생각이 있다.

하나님이 완전하시지,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완전한 것이 아니다.

진리가 완전하지,

진리를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우리가 완전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 나와 다른 신학,

나와 다른 생각을 무조건 ‘틀렸다.’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두 번째는 침묵을 강요당하는 의견이 틀린 것이라 하더라도,

일정 부분 진리를 담고 있을 수 있다.

그러니 소수 의견이라도 마음껏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진리를 더 깊이 알 수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종교개혁은 루터가 ‘시작’한 것이 아니다.

그가 ‘다시 시도’한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 있었던 종교개혁이 다 옳은 생각은 아니었다.

어떤 이들은 너무 신비주의로 빠졌고,

어떤 이들은 너무 과격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이 다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

 

그 당시 생각들이 자유롭게 이야기 될 수 있었다면,

종교 개혁은 훨씬 빨리 이루어졌을 것이다.

진리가 더 빨리, 더 선명하게 드러났을 것이다.

상대방의 말이 틀린 부분이 많아도

들을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성경은 덮어 놓고 믿는 책이 아니다.

읽고 연구하고, 하나하나 깨달아가며 더 깊어지는 책이다.

어쩌면 우리는 공격받는 소수가 되기를 두려워하기보다,

공격하는 다수가 될까봐 두려워해야 한다.


3장: 천재는 자유의 공기 속에서만

3장은 개별성 문제를 다룬다...

각자의 개별성을 존중해 주라는 뜻이다...

더욱이 사회 발전을 위해서도 각자 개별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천재는 언제나 독창적이기 때문이다.

개별성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면

천재는 자신의 독창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좌절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스튜어트 밀’은 이렇게 말한다.

“천재는 오직 자유의 공기 속에서만 자유롭게 숨 쉴 수 있다.”

 

한국 사회, <자유론> 어느 때보다 필요

책을 읽고 나서,

다른 사람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성도에게 필요한 자세를 세 가지로 짧게 정리 할 수 있었다.

먼저 겸손이다.

내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다.

내가 부족할 수도 있다.

이것을 인정하고 한 걸음 물러서는 것.

말하기보다 들어주는 것.

나는 진리를 ‘따르는 사람’이지

‘내 생각이 진리인 것은 아니다.’라는

물러섬의 자세가 필요하다. 겸손의 모습이다.

 

박명수 목사
사랑의침례교회 담임, 저서 《하나님 대답을 듣고 싶어요》

출처: 아트설교연구원(대표 김도인 목사)
https://cafe.naver.com/judam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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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한복음 4:14

 

예수님만이 길이고 진리이고 생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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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워셔 목사님께서 생각하시는 결혼 <페이스북최해룡님 편집글>

 

복음과 결혼 -폴 워셔-

 

메세지중에 일부입니다.

천천히 시간을 내어 읽어보세요.

 

(전략)

...저를 단념시키는게 결코 쉽지 않을겁니다. (좌중 폭소)

저는 25시간동안 설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대신 1시간짜리 설교를 25번 하도록 하겠습니다. (좌중 폭소)

 

저는 오늘 결혼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복음 다음으로 '결혼'은 제가 가장 열정을 가지고 있는 주제입니다.

 

왜냐하면 제게 있어 가장 부족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청년들에게 항상 말합니다.

"제가 페루에서 처음 몇 년동안 독신 선교사로 사역을 할 때,

저는 정말 영적인 사람이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좌중 폭소)

결혼하고 난 후에

저는 제가 얼마나 그리스도님을 닮은 삶을 살고 있지 않았는지를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저는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으로 비췰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님께서 우리의 삶에서 실제로 일하시고 계신다는 증거는

우리의 결혼 생활에서 가장 잘 나타납니다.

우리는 우리처럼 의롭다 칭함을 받고, 부분적으로 성화되고,

아직 영화되지 못한 한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 생활에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나타나게 됩니다.

제가 결혼에 대해 말씀을 전하고 싶은 또 다른 까닭은

바로 제 자신이 가장 절실하게 들어야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날 교회를 둘러볼 때,

저는 교회가 부부나 가족을 돕고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대부분의 교회는 가정을 오히려 상하게 합니다.

우리 나라는 사회주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사회주의가 바로 우리가 교회에서 실천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주의는 그저 인간의 자유를 강제로 빼앗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주의가 인간의 자유를 빼앗는 것은

바로 그 체제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자유를 포기하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자유에 따르는 책임을 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죠.

여러분, 교회는 여러분의 아내를 예수님의 제자로 만들 책임이 없습니다.

교회는 여러분의 자녀들을 가르칠 책임이 없습니다.

여러분께서 떠맡기신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하질 않으시니까요.

어떤 신사분께서 제가 목회하고 있는 교회에 오셔서 물으셨습니다.

"이 교회에서는 제 자녀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습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당신의 자녀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대신 당신의 자녀들에게 경건한 아버지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만약 당신께서 이 교회에 다니게 되신다면,

당신은 당신의 아내를 예수님의 제자로,

당신의 자녀를 예수님의 제자로 양육할 책임을 지게 되실 것입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얼마나 많은 물질이 주일학교 교재를 위해서 쓰이는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력이

한 교사를 훈련해서 아이들을 가르치게 하기 위해서 쓰이는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주일학교와 교사들을 위한 학회에 쓰이는지 아십니까?

자, 이제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얼마나 많은 물질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경건한 아버지들을 가르쳐서

자신들의 아이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양육하는데에

도움을 주는 학회나 책자에 쓰입니까?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성경의,

특히 에베소서 6장의 직접적인 명령입니다.

하나님께는 차선책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어떠한 사람도 맡은 바 책임을 져버리도록 용납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교회는 성경을 강해함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역할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성경을 강해함으로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역할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교회 안에서

아이들과 청소년들을 위한 행사나 프로그램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은

단지 우리의 죄가 얼마나 흉악한지를 선명하게 드러낼 뿐입니다.

제게 있어 첫 번째 의무는

바로 제 아내를 위해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제게 있어 두 번째 의무는

바로 제 아이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건 여러분들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자, 이제 결혼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합시다.

시간이 없어서 아마 많은 부분들을 그냥 훑어 지나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일단 로마서 8장을 펼치도록 합시다.

로마서 8장 28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분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 29절 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또한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 아들이 많은 형제 가운데 맏아들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다.

" 한 청년이 제 사무실로 들어와 제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 누구 누구랑 결혼하고 싶어요.

" 제가 묻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왜입니까?" "아니, 뭐... 일단 그녀는 아름답고요.

그녀 곁에 있고 싶고요.

우리 서로 잘 맞아요. 싸우지도 않고요.

그리고 제가 그녀와 함께 있을 때

저는 제가 마치 완전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고요..."

그 청년은 계속해서 말합니다.

마침내 그가 말을 마쳤을 때,

저는 그를 바라보면서 말했습니다.

 

"제가 당신을 잘 이해했는지 모르겠군요.

그러니까 당신은 이 여자가 당신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필요와 욕구를 전부 채워주기 때문에 결혼하고 싶은 것이라는 겁니까?"

그러자 그가 손사례를 치며 말했습니다.

"아니에요! 제 말은 그게 아니에요!"

제가 말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이 여자가 아름답기 때문에 결혼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녀가 그 아름다움을 잃으면 그 땐 어떻게 할 것입니까?

만약 그녀보다 더 아름다운 여자가 당신에게로 온다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당신은 이 여자가 당신과 잘 맞기 때문에 결혼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만약 결혼하고 난 후에

그녀가 당신이 생각했던 것만큼 당신과 잘 맞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되면, 그 땐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녀보다 당신과 더 잘 맞는 여자가 나타나면요?

당신은 이 여자와 함께 있으면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몇 시간동안이나 대화 할 수 있기 때문에 결혼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만약 더이상 그렇게 대화할 수 없는 날이 온다면,

그 땐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리고 만약 당신이 당신의 배우자보다

사무실의 여비서와 더 말이 잘 통하게 된다면 그 땐 어떻게 할 것입니까?"

 

우리는 왜 결혼을 할까요?

많은 이유들이 있지만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가장 본질적인 이유를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첫 번째, 결혼은 하나님께로부터의 신성한 부르심입니다.

결혼은 그 분의 딸들 중 한 명의 유익을 위해

당신의 생명을 내어놓으라는 하나님의 신성한 부르심입니다.

 

비록 당신이 얻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결혼의 가장 근본적인 기반은

얼마나 당신의 배우자가 당신과 죽이 잘 맞는지,

혹은 얼마나 그 사람이 당신의 필요를 채워주는지,

혹은 그 사람에 대해 당신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가 아닙니다.

결혼의 기반과 기초는

바로 당신이 당신의 생명을 이 여자를 위해서

내어 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네, 바로 이 특별한 한 여자를 위해서요.

 

비록 많은 부분에서 부족하지만,

저는 제가 말씀을 가르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저는 제 목숨이 붙어있는 한,

이 부르심을 멋대로 내려 놓을 수 없다는 것도 압니다.

저는 이 일을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제가 말씀을 가르치도록 부르심을 받은 만큼이나,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께로부터

그 분의 딸을 위해서 제 생명을 내어 놓으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저는 멋대로 이 부르심 또한 내려 놓을 수 없습니다.

말씀을 가르치라는 부르심을 무를 수 없는 것만큼이나,

그 분의 딸을 위해 제 생명을

내어 놓으라는 이 부르심 또한 무를 수 없는 것입니다.

결혼식 때 제가 하나님께, 또 제 아내에게 "네"라고 대답했던 순간,

저는 이 행성의 모든 이들에게 "아니요"라고 말한 것입니다.

 

결혼은 당신에게 우리 주님께서 명령하신 제자도를 위해

가장 힘들면서도 가장 중요한 기회를 제공해줄 것입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마태복음 16장 24절입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자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도록 하여라.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려고 하는 자는 그것을 잃을 것이고,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그것을 찾을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는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사람이 자기 목숨의 대가로 무엇을 주겠느냐?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 가운데

그의 천사들과 함께 올 것이니,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위에 따라 갚아줄 것이다.'

" 여러분들께 묻습니다. 목숨을 잃어본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선교사들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외지에 나가서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어야만 하고,

또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고통을 겪어야 하는 그런 선교사들이 아닙니다.

아니요. 여러분들은 지금 미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가는 것 때문에 핍박을 받지도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무슨 댓가를 치뤘습니까?

말해보십시오! 무슨 댓가를 치뤘습니까?

일요일 아침이요? 텔레비젼 프로그램 몇 개 못 보는거요?

대체 무슨 댓가를 치뤘습니까?

여러분들은

어디서 우리 주님께서 명령하신 제자도를 위한 기회를 찾습니까?

어디서 그런 기회를 찾는지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분의 섭리 가운데서

당신의 인생 안에 끌어들이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그 기회가 있습니다.

 

제 말씀을 들어보세요.

젊은 청년 한 명이 제게 왔습니다.

그 청년은 중국에 미쳐있었습니다.

"중국 선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중국 사람들을 위한 선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이상하게도 중국 사람들이 좋습니다," "중국 선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제 심장은 중국에 있습니다"라면서

저를 만날 때마다 노래를 불렀습니다.

 

어느 날, 더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제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왜 당신이 중국인들을 사랑하는지 아십니까?"

그가 물었습니다. "왜 입니까?"

 

"왜냐하면 당신이 아는 중국인이 한 명도 없기 때문입니다

," 제가 말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저는 많은 중국인들과 친분이 있습니다.

좋은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에 있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사랑하는건 아주 쉬운 일입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중국인들을 향한 사랑은 낭만에 불과합니다.

중국에 가서 6개월동안 있은 후에,

신선함이 사라지고 나서 아직도 그들을 사랑하는지 제게 말해주십시오!

당신이 당신 나라 사람들에 대해 싫어하는 부분들을

중국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어차피 결국은 다 똑같은 사람들이니까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여러분들은 목숨을 잃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 분을 따르기 위해서 재산을 잃거나

극심한 희생을 겪어본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여러분께 그럴 수 있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그 기회의 다른 이름은 바로 '결혼'입니다.

 

사실 선교지에서 생판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잃는 것이

여러분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잃는 것보다 더 쉽습니다.

다른 인간을 위해서 목숨을 내어 주고,

그 사람을 위해서 종이 되고,

그들의 유익을 위해서,

또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목숨을 잃는 것 말입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몇 년 전에 어떤 분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종으로 부름받고 싶다고 말하지만,

정작 종으로 취급받는 것은 싫어한다.

" 결혼은 당신이 정말로 종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입니다.

누가복은 22장 25절에서 27절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방인들의 왕들은 그들을 지배하고

그들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자들을 은인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렇지 않으니,

너희 가운데서 큰 자는 어린 자처럼 되도록 하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처럼 되도록 하여라.'

" 이 말씀은 성경에서 말하는 남자의 지도권에 대한 개념에 빛을 비춰줍니다.

이 것은 마치 온 가족이 당신의 연장선으로서

당신만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한 가정의 '은인'이 될 기회가 아닙니다.

가장(家長)은 '섬기는 자'입니다.

가장(家長)은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가장(家長)은 아내와 자녀들의 유익을 위해 그들을 인도하며,

그들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이런 기회가 매일같이 주어집니다.

여러분들 중 몇몇 분들은 제가 만약

"작년에 그리스도님을 위해서 목숨을 잃은 적이 있습니까?"

라고 물어보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앉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여러분들께서 결혼을 이러한 시각으로 보신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많은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어떤 낭만적이고 추상적인 그런 섬김이 아니라,

거의 24시간동안 당신과 함께 생활하는

진짜 사람들을 향한 진짜 섬김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입니다.

그리스도님을 따를 수 있는 기회...

그리스도님을 따를 수 있는 기회말입니다.

 

요한 사도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니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2장 24에서 25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하니,

밀알 하나가 땅에서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맺는다."

 

많은 남자들이 10년, 15년의 결혼 생활 뒤에 만족감을 잃어버립니다.

중년의 위기라고도 하죠.

그들은 어떻게 하면 스스로의 인생을 더 만족스럽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합니다.

제가 답을 말해드리겠습니다.

당신이 공허함을 느끼는 이유는

바로 당신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고

그대로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남자들이 말합니다.

"저는 45살입니다. 그런데 이게 인생의 전부입니까?

정말 이게 다입니까?

뭔가 다른 것을 찾아봐야하지 않을까요?

아니, 벌써 제 인생의 반이 다 가버렸단 말입니다.

"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신의 인생의 모든 공허함은

당신이 스스로에 대하여 죽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결과입니다.

들어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병적인 교리를 가르치고 계신게 아닙니다.

그 분의 지혜와 그 분의 사람들을 향한 사랑 가운데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길을 가르치고 계신 것입니다!

 

갑자기 모든게 짜증나고 답답해서

"에이씨, 잠깐동안이라도 나만을 위해서 뭔가를 해야겠어.

나는 열심히 일했고 피곤하니까."라고 생각해서 한 일들 중에

여러분들에게 참된 기쁨을 안겨준 일이 있긴 하던가요?

언제 그런 적이 있습니까?

예를 들어서 여러분들이 어떤 장난감을 사기 위해 돈을 모았다고 합시다.

물론 그 돈은 가족들을 위해서라던가 더 보람차게 쓰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여러분들은 '열심히 일한 당신, 질러라'라고 생각하면서

당신의 취미를 위해서, 아니면 어떤 장난감을 사는데 돈을 다 써버렸습니다.

근데 그거 아십니까?

그렇게해서 산 장난감, 얼마 안 가서 싫증이 납니다.

얼마 안 가서 다시 불만족스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뭐 하나 여쭤보겠습니다. 당신은 언제 그리스도을 섬기기 위해

당신의 생명을 내어준 적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마치 폭발할 것과도 같은 엄청난 기쁨을 느껴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이 것은 마치 한 영혼을 구령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에게 가서 예수님을 증거하라는 성령님의 목소리에 순종해서,

설사 그 사람이 당신을 비웃고 조롱한다고 해도,

단지 그리스도님을 섬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공중에 붕 떠있는 것처럼 기뻤던 경험이 있으십니까?

예수님께서 생명의 길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밤에 잠들기 위해 침대 위에 고단한 몸을 눕혔을 때,

하루를 돌아보면서, '전제'와 같이 아내를 위해, 아이들을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형제, 자매들을 위해 당신 스스로를 부어드렸다는 사실을 알 때,

그 때 당신의 끝을 모르는 기쁨을 느낄 것입니다.

바울 사도님께서는 빌립보서 2장 3절부터 4절에서,

"아무것도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다른 사람들을 자기보다 낫게 여겨라.

각자 자기 자신의 일을 돌아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일도 돌아보아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바울 사도님께서는 지금 생명의 길을 가르치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그 분은 모세 선지자님보다 더 위대하시고,

세상의 그 어떤 지혜를 다 합한 것보다도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그런 그 분께서 어떻게 하면 기쁨을 누릴 수 있는지, 진정한 만족을 가르치고 계시는 것입니다.

 

자, 이제 결혼에 대해 말씀을 나누도록 합시다.

여러분들에게 유익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무수히 많은 결혼 정보 회사들이 눈에 띕니다.

'e-하모니'도 그렇고요. 심지어는 기독교인들만을 위한 결혼 정보 회사들도 있더군요.

와, 이건 정말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좌중 폭소)

가끔 사람들이 저를 찾아와 이런 기독교 결혼 정보 회사들에 대해 질문하곤 합니다. 성경적이냐고요.

그러면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이유와는 다를겁니다."라고 대답합니다

. 사람들은 이러한 기독교 결혼 정보 회사들이 비성경적인 이유가

바로 신자들이 하나님의 섭리를 믿지 않는다는 등 여러가지 이유를 댑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기독교 결혼 정보 회사들은 분명히 비성경적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서로 잘 맞는 두 사람을 결혼시키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제가 질문한 사람들이 말합니다. "흠, 무슨 뜻입니까?"

"대개 하나님의 의도는 그게 아니라는겁니다." (좌중 폭소) 찰떡 궁합은 거짓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대개 거의 당신의 눈을 멀게 만드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과 잘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당신이 그 사람으로부터 강함을 기대하는 부분이 굉장히 부족한 사람을 당신과 붙여

깊은 관계 속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아니, 왜 하나님께서 그러실까요? 우리를 싫어하기라도 하시는걸까요? (좌중 폭소)

예레미야 선지자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오, 주님, 주님은 저를 속이셨고, 저는 속아넘어갔습니다

(O LORD, you have deceived me, and I was deceived;)"? (좌중 폭소)

 

하나님께서는 왜 그러실까요? 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본문 말씀인 로마서 8장 28절과 29절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 분의 섭리 안에서

그 분의 자녀들에게 하시는 모든 일의 목적은

바로 그 분의 자녀들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께서는 예수님의 형상이라고 할 때 어떤 특징들이 가장 먼저 떠오르십니까?

저는 다음 세 가지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무조건적인 사랑,

자비,

그리고 은혜.

 

만약 예수님을 닮아가는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냐고 제게 물으시면

저는 이 세 가지를 닮아가는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자, 제가 여기에 적어온게 있는데요.

 

기억에 의존하다가는 중요한 내용들을 빠뜨릴 수가 있으니 읽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께 묻습니다.

만약 당신이 당신이 원하는 모든 조건을 다 갖춘 사람과 결혼했다면,

당신은 어떻게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방법을 배울 것입니까?

질문입니다.

만약 당신이 당신을 한 번도 실망시킨 적도 없고,

당신에게 한 번도 어려움을 준 적도 없고,

당신에게 한 번도 죄를 지은 적도 없고,

항상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그런 배우자와 결혼을 했다면,

당신은 어떻게 자비, 관용, 오래참음, 연민을 배울 것입니까?

 

만약 당신이 항상 당신으로부터 좋은 대우를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과 결혼했다면,

당신은 어떻게 자격없는 사람에게 베푸는 은혜를 배울 것입니까?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제 말을 들어보십시오.

저는 결혼이 첫째되는 목적이

바로 당신을 그리스도 예수님의 형상에 닮아가도록 성화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혼은 성화에 있어 가장 위대한 길입니다.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모든 조건을 다 갖추지 못한 사람과 결혼했습니다.

그로인해 당신은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당신은 자비가 필요한 사람과 결혼했습니다.

그로인해 당신은 자비를 베푸는 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과 결혼했습니다.

그로인해 당신은 자격없는 그 사람을 위해 자기 자신을 쏟아붓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로인해 당신은 당신이 경배드리는 하나님께 조금씩 더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이해가 가십니까?

당신은 이러한 것들 때문에 하나님께 예배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을 다른 이들에게 베풀고 싶어하진 않습니다.

당신은 은혜를 받기 위해 하나님께 예배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당신의 아내로 하여금 모든 조건을 다 맞추어서

당신의 은혜가 필요없도록 살게끔 강요합니다.

당신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 예배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조건에 부합하지 못하는 당신 자신의 아내를 향해 화를 냅니다.

 

이제 이해가 가십니까?

 

제가 적어온 것을 계속해서 읽도록 하겠습니다.

중요한 내용을 빠뜨릴 수는 없으니까요.

만약 당신이 완벽한 배우자를 만난다면 어떻게 되는지 혹시 상상이 가십니까?

 

당신은 당신의 아내를 흠모하고 여왕처럼 대접하는 한 남자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건 오직 당신의 아내가 당신의 모든 필요와 기대를 충족시키기 때문이죠.

당신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자기밖에 모르는 괴물이 될 것입니다.

당신은 절대로 당신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로 인해 당신의 진짜 모습로 인해 회개하지 못하고

은혜를 구하기 위해 예수님께로 가까이 가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배우자의 잘못과 실수가 당신으로 하여금 당신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로인해 예수님께로 더 나아가게 만들고, 성장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금식의 한 가지 목적은,

금식은 이 시대에 잊혀지지 않은... 아니, 잊혀져버린 신앙의 모습입니다.

금식은 많은 유익을 가져다줍니다.

그 중에 한 가지 유익은 금식을 가르치고 행하는 사람들조차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데요.

자, 들어보십시오.

만약 당신과 제가 같은 사무실에서 일한다고 합시다.

어느 날, 제가 당신 책상으로 와서 "안녕하십니까, 요한 씨"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근데 당신은 마치 제게 화라도 난 듯,

저를 보지도 않고 제가 하는 말에 모두 짧게 대답합니다.

결국에 저는 제 책상으로 돌아갑니다.

몇 시간이 지나고, 당신이 제 책상으로 와서 말합니다.

"이봐요, 폴 씨. 아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오늘따라 처리해야할 중요한 업무들도 많고,

집안에 약간 문제도 있고, 사실 조금 아프기까지 해서...

그냥 오늘은 제가 제가 아닌 듯 하네요."

 

당신이 하는 말의 반대가 사실은 진짜입니다.

당신은 오늘 당신의 진짜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업무 스트레스, 집안 문제, 질병과 같은 문제들이 당신의 진짜 모습을 밖으로 끄집어낸 것입니다.

배가 부르고, 모든 상황이 잘 풀려갈 때,

당신은 마치 영적인 사람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만약 하나님께서 계속 그런 상태가 지속되도록 허락하신다면,

당신은 겉으로는 영적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속으로는 마른 뼈가 가득한 회칠한 무덤과 같게 될 것입니다!

웃기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저는 연예인처럼 생겼지만

바울 사도님의 영성을 갖춘 여자와 결혼한 많은 남자들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남자들은 항상 자신들이 얼마나 대단한 남편인지에 대해 자랑하고 다닙니다.

가끔 저는 그 남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대단한 남편인 이유는

당신의 아내가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충족시켜주기 때문이지 당신이 잘나서가 아닙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하시겠습니까?

최악의 결혼은, 어쩌면, 어쩌면 가장 영적으로 유익할지도 모릅니다.

 

제 아내와 저는 다릅니다.

제 아내와 저는 매우 다릅니다.

결혼 전에 저는 제 아내와 제가 이렇게 다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결혼 하고보니 우리는 서로 잘 맞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닥치면 남자들의 머릿 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내가 잘못 골랐구나." (좌중 웃음) 마음껏 웃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카메라는 저를 비추지 여러분을 비추지 않으니까요. (좌중 폭소)

그리고 남자들은 우울해집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다를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깨닫지 못하는게 하나 있습니다.

당신의 아내와 당신 사이의 불화가

이 결혼이 바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가장 큰 증거 중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결혼을 통해서 당신에게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싶으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예수님을 닮고 싶다고 기도한 적이 있기 때문이죠.

 

아마 당신이 지금까지 한 말 중에서 가장 위험한 말이였을 것입니다. (좌중 웃음)

 

"주님, 어떤 댓가를 치루더라도 좋으니 예수님을 닮아가게 해주십시오."

라고 당신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알았다. 각오해라."라고 하십니다.

그 분께서는 충분히 강한 배우자와 충분한 은혜를 주셔서,

미성숙하고 하나님의 진정한 역사를 잘 깨닫지 못하는 결혼 초기를 잘 지나갈 수 있도록 하십니다.

 

하지만 사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배우자가 가지고 있는,

당신이 끔찍히 싫어하는 그 단점조차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처럼 그 분의 섭리 아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당신이 그로 인해 더 예수님을 닮아가고,

당신의 배우자가 당신의 조건들을 충족하지 못할 때조차도

그 혹은 그녀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요즘 많은 남자들은 사람들이 참 좋습니다.

그들은 결혼을 하고 자신의 아내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고

그녀와 싸우게 되도 이혼은 절대 안 된다고 합니다.

다행입니다. "이혼은 안 되고 그냥 이렇게 사는 수 밖에"라고 체념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이미 그들의 아내와 이혼을 했습니다.

 

아내는 아내대로 자신의 인생을 살고, 남편은 남편대로 자신의 인생을 삽니다.

 

밤이 되서 침대에 누워도 서로 등을 돌리고 잡니다.

남편은 아내를 더이상 신뢰하지 못하고,

아내도 남편을 더이상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 남자는 "뭐, 내가 잘못된 결정을 내리긴 했지만

이제와서 어떻게 할 수는 없으니까."라고 생각하면서 하루 하루 살아갑니다.

그들의 결혼에 목적의식이 있습니까?

목적이 없다면 왜 결혼 생활을 유지할까요?

괜히 그렇게 마음 고생하는 것보다는 이혼하는게 낫지 않을까요?

이건 사단의 거짓말입니다. 절대로 괜한 마음 고생이 아닙니다.

설사 결혼 생활에 문제가 있다고 해도,

모든 신자의 결혼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보십시오. 예수님께 순종을 다짐하십시오.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서 당신의 아내를 위해 생명을 내어주십시오.

 

그녀가 당신의 아내인 이유는 당신을 성화하기 위함입니다.

 

제가 이 책을 추천하는 것 때문에 아마 저를 싫어하게 되실텐데요.

스터드 스콧의 '모범적인 남편 (An Exemplary Husband)'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 스콧이 말하기를,

"결혼 생활의 모든 문제는 바로 당신이 예수님을 닮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라고 말합니다.

저는 선교지에서 기적들도 보았습니다.

저는 선교지에서 하나님께서 위대한 사역을 하시는 것 또한 보았습니다.

제가 선교지에서 경험한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여러분들은 선교 열정으로 불타오르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더 위대하고 엄청난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분의 능력과 지혜를 제게 보여주신 일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제 아내를 만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인생의 많은 부분들이 여전히 변화되어야한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비록 아주 느리게 성장하고 있지만,

저는 분명히 예수님을 점점 닮아가고 있습니다.

이게 다 하나님께서 제 아내를 제 인생에 보내주셨기 때문입니다.

제 아내가 아니였다면

제 인생의 많은 부분들은 여전히 변화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 인생의 많은 부분들은 여전히 그리스도 발 앞에 복종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해가십니까?

여러분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대체 결혼의... 여러분.

심지어 기독교 결혼 상담가들조차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결혼이 천국의 한 조각을 떼어

이 땅에서 누리는 것이라고 여러분들에게 말할 것입니다.

결혼은 분명히 기쁨과 축복이지만

저는 여러분이 그게 결혼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를 원합니다.

 

결혼의 목적은

바로 이 여자를 통해서 당신이 더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녀의 부족함을 통해서 예수님을 더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여러분의 아내들이 여러분 대신에 이 자리에 앉아있었다면

저는 여러분의 아내들에게 똑같은 말을 했을 것입니다.

들어보십시오. 새 언약에서는 말입니다.

 

하... 들어보십시오. 새 언약에서 사랑은 전부입니다. 전부입니다.

하나님, 저의 주님을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고,

제 이웃, 그 중에서도 저와 가장 가까운 이웃인 제 아내를 제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

여러분들은 다른 부분에서 노력하신다고 해도

저는 앞으로 50년동안은 이 부분에서 노력할 것입니다.

저는 믿게 되었... 아니, 저는 믿습니다.

 

만약, 만약... 만약 한 사람이... 성경에서도 말하지요.

만약 한 사람이 그의 혀를 통제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완벽한 사람이라고요.

만약 한 사람이 그와 가장 친밀한 관계에서 예수님을 닮아간다면,

그는 모든 관계에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강단에 서서 예수님을 닮은 척 하는건 쉽습니다.

아니, 얼마나 쉬운지 구역질이 날 정도입니다.

하지만 저를 가장 잘 아는 그녀와 함께 있을 때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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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말씀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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